『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여성의 욕망이 드러날 때


1992년에 ‘강민주’가 세상 밖으로 나온 후 2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강민주만큼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여성 인물은 요즘의 한국 소설 내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은 듯하다. 28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강민주는 20대의 어린 나이에 부와 지성을 모두 갖춘 여성이다. 그러고 그런 강민주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모든 폭력과 억압을 근절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서술됐을 때 강민주는 단순히 여성의 인권 신장을 바라는, 의욕적이지만 평범한 여성이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강민주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30대 인기 남배우를 납치·감금하는 계획을 집어넣으며 평범한 서사를 뒤틀어버린다. 20대 대학원생 여성이 모두의 사랑을 받는 30대 남배우를 납치하고 정신적으로 조종한다는 생각은 여성에게 한계는 없다고 받아들여지는 요즘에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욕설과 일상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남자들은 미개인이다. 그들은 여태도 동물에서의 진화과정을 끝내지 못한, 아직 많은 부분 수성(獸性)이 남아 있는 야만인이다.’ – p88

여성 문제 상담소에서 근무하는 강민주는 수시로 걸려오는 폭력 피해 여성들의 전화를 받는다. 그 전화엔 남편의 신체 폭력, 폭언 등을 하소연하면서도 막상 이혼은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아내들이 등장한다. 강민주는 전화에 응대하며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남성, 가부장 중심주의 사회의 폐해를, 그 폐해에 정신적으로 지배당해 대응하지 못하는 수동성을 증오하게 된다. 옆집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을 들으면서, 직장생활은 이렇다고 핑계 대며 태연하게 성매매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모두가 외면하던 사회의 썩은 부분을 자신이 도려내야겠다고 강민주는 생각하는 것이다.

‘인기 여배우가 백지수표를 받고 몸을 팔 수 있다면, 인기 남자 배우도 여자한테 팔려갈 수 있는 것이다. 왜 안되는가. 남자들의 동물적인 욕정, 노출된 여자들은 모두 노리개로 파악하는 공공연한 매춘, 구애의 권리는 남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아는 이 사회의 고정 관념을 나는 역으로 깨부술 수도 있다.’ – p149

이에 강민주는 남녀노소 불문 사회 전체가 나서서 사랑하는 30대 남배우 ‘백승하’를 사회가 만만히 대하는 20대 여성인 자신이 납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의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전복시킨다. 따라서 초반의 강민주와 백승하의 관계는 철저한 상하관계를 유지한다. 백승하가 강민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질문을 하면 강민주가 그를 구타하기도 하며, 바깥의 소식은 온전히 강민주가 주는 신문으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서로를 알아가며 서로의 인간성을 목격하는 연극 연습에서 강민주와 백승하는 성별 담론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상대방을 마주한다. 그 순간에서만큼은 성별 간 폭력과 증오가 잊혀질 수 있던 것이다.

결국 강민주의 이야기를 통해 양귀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혐오와 폭력, 썩어 문드러진 모든 것들을 집단의 틀에서 이해해선 안 된단 것이다. 집단의 틀이 아닌 각각의 특성을 목격하려고 시도할 때 비로소 그것들은 없어질 수 있다. 대범한 강민주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기존의 보편적인 이해 담론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의 끝이 너무 약하다고 실망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성별 이분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내뱉는 요즘에야말로 이런 이야기가 다시 재조명돼야 한다.

‘나는 가능하면 이 소설이 여성소설의 범주에서만 읽히지 않고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유형무형의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함께 읽히기를 감히 소망한다. 그것이 삶을 대하는 진정한 예의라고 믿는다.’ – p358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여성의 이야기가 왜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해 읽히는지, 양귀자 작가는 폭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곰곰이 곱씹으며 읽기를 바란다. 단순히 쾌감만을 주는 여성 서사로 읽히질 않길 나는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