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아직 다 지나지 않았지만 올 한 해 가장 화제성 있고 다방면에서 많이 언급된 독립영화를 꼽아보자면 아마 많은 이들이 <남매의 여름밤>을 생각할 것이다. 자극적이거나 유해한 요소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도, 가족 간의 갈등 속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변화를 다루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각기 다른 지점에서 자신의 모습과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신기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특정한 사건을 향해 달려가지도, 가족을 통해 교훈을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여름방학을 맞아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 옥주네 가족과 모종의 이유로 함께하게 된 고모는 집 안팎에서 입체적으로 자리하며 관객이 그저 있는 그대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인물의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데, 개중 옥주는 감정 표현에 서투르지만 말보다는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그것을 숨기려 해도 잘 숨겨지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섬세한 감정의 결을 따라가기에 가장 몰입도가 높은 인물이다. 그렇게 극 내내 옥주에 몰입하여 따라가다 한순간 생각지도 못한 눈물에 잠식되어버렸던 나는, 어림잡아 생각하고 넘어갔던 옥주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같이 사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가족, 그 간극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어 어렵기만 하다. 극 중 옥주와 그다지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함께 살지 않기에 그럴 기회가 적었던- 노령의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 외출이라고는 가끔 마당에 있는 텃밭에 물을 주러 나가는 것이 전부이다. 옥주는 양옥집 2층에 자신의 공간을 꾸려 지내며 할아버지의 방이 있는 1층과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접촉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말수가 적은 옥주가 이런 할아버지와 스스럼없이 지낼 리 만무하다.

  대화를 자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같은 집에 함께 산다는 사실 만으로 가족이라는 존재에 온 신경이 가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조촐하게 열린 축하의 자리에서 유일하게 선물을 준비한 가족은 옥주뿐이다. 별말 없이 모자를 건네지만 지금의 할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지 한참을 고민해 골랐을 옥주의 모습이 선하다.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면서도 내내 울지 않던 옥주가, 더 이상 할아버지가 없는 양옥집에서 밥을 먹다 갑자기 큰 소리로 양껏 울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그의 죽음에 자신의 탓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수가 적어 더욱이 생각이 많았을 옥주에게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치 못했을 것이다. 

  옥주에게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은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공간임과 동시에 이혼 후 일부러 피해온 엄마와의 만남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공간이다. 계속해서 엄마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사준 것들을 잔뜩 들고 돌아오는 동생에게 자존심도 없냐며 어깃장을 놓지만 이는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미처 인사할 시간도 없이 떠나버린 할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슬픔과 식장에 왔음에도 자고 있는 자신을 깨우지 않고 가버린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옥주는 그동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쌓아뒀던 감정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세상 모든 것이 어려울 사춘기를 겪고 있는 옥주에게 가족마저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다 들어줄듯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아빠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만 나를 가장 잘 따르는 동생, 나와 함께 고민을 나누며 진지한 얘기에 대화 상대가 되어주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고모까지.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색으로 분명하게 나를 표현해내는 옥주에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계속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 꼭 안으며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