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무해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최은영 작가님의 기사를 찾아보던 중, ‘무해한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할 때, 관계가 아닐 때 무해한 사람이 되기는 더 쉬운 것 같다고. 실제적인 삶에서 엮여 살게 된다면 그럴 수만은 없고, 아마도 진짜 관계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최은영 작가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런 관계들 – 한 때 꿈틀거리며 서로를 향하던 관계가 어느덧 딱딱한 서랍 안에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쳤던, 그런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취약한 삶과 공간을 비추며, 그 속에 사는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는 상처가 일던 관계의 끝에 먹먹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래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을 긍정하며 이들을 바라본다.

모래로 지은 집

어떤 관계는 한 때 지나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이 마음에 진득하게 남기도 한다. 그 기억은 어딘가에 고여 있어 흘러가는 시간을 틈타 문득 떠오르고 이내 담담해진 아픔을 한 번 더 깊이 삭힌다. 쉽게 그를 단죄했던 순간, 사랑에 대답하지 않고 상처를 주던 순간은 희미하지만 죽지 않은 기억으로 살아있다. 책에 실려 있는 일곱 편의 단편 중 “모래로 지은 집”은 다 읽고 나서도, 다시금 제목으로 돌아가 한참을 머무르게 된다. 모래로 집을 지을 때면, 언젠가 부서져 내릴 것을 알면서도 계속 물을 뿌리며 붙어있길 바랬던 그런 마음들이 떠올라서.

“모래로 지은 집”은 나비, 공무, 모래 세 명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세 사람은 고등학교 삼년 내내 통신친구로만 지내다가, 대학교 1학년 공무가 게시글에 올린 정모를 통해 만나게 된다. 그 이후로 적극적인 모래 덕에 세 사람은 만남을 이어가고, 하루는 공무가 나비에게 말했다. 정모 글을 올렸을 때, 네가 나왔으면 했다고.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고. 나비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이해받은 듯 했고, 자신 또한 정의내리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나비에게 공무는 애틋한 존재였다. 우린 사랑 앞에 붙는 폭력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니까. 우리에게 ‘집’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너 또한 나와 같은 아픔이 있다는 것은 ‘우리’라는 단어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에 비해 모래는 좋은 집안에서 자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사람이었고, 그런 자신을 과시하는 법이 없었지만 나비는 그런 관대함이 더 사치스러운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비싼 값을 주어도 가질 수 없는 그런 관대함이라는 건. 나비는 모래를 보며 생각한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어떻게 알겠냐고. 그리고 모래에게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말한다.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 나비가 모래에게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는 건 타고난 습관처럼 같다. 누군가의 불행은 어떡해서든 나의 불행에 빗대어 가볍네, 무겁네 하며 무게를 메기곤 한다. 세상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고작 저런 일로 고통스러워하는지. 왜 가장 외로운 사람 행세를 하는 건지. 결국 나비는 모래를 향한 그런 마음을 이내 떨쳐내지 못한다. 모래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를 단죄하고, 또 단죄한다.

같은 모양처럼 보이는 사랑이 있다. 모래가 나비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보내는 시선과, 나비가 공무에게 더 좋은 배웅을 해주지 못해 스스로 느끼는 한탄함과, 공무가 모래를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바라보는 응시와 같은 것들이. 그 모습은 다를지라도, 뒤에선 같은 그림자를 하고 그들 사이를 떠다닐 것만 같다. 세 사람은 서로의 사진을 찍고, 기꺼이 서로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같아 보이는 사랑에도 그 사랑을 가진 사람은 다른 모양을 하고, 각자의 틀 안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틀 안에서의 사랑이 발산할 수 있는 사랑의 최대치라면, 들여다볼 수 없는 틀의 크기가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 사랑은 원래가 같아 보여도, 사람이라는 틀 안에서 사랑의 크기는 제각기 달라지고 만다. 뻗기 나름인 마음과 좁히기 나름인 틀 안에서 동등할 수 없이, 불공평하다. 나비와 모래의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너는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상상하지 못할 거야. 그 사실이 항상 기쁨이었던 것만은 아니었지만.

– 모래가 나비에게

언젠가 모래는 나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이런 감정 모르잖아. 나비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그 사실이 자신을 외롭게 했다. 끝내 나비는 자신의 차가웠던 사랑의 방식을 깨닫지만, 한편으론 알고 있다. 사랑은 원래가 불공평한 모양으로 태어나 그 모양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그러한 불완전함 속에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용기가 생길 만큼 내 틀 안에 든 사랑이 좀 가득찬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처만큼 사랑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