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p17

  자신에게 솔직한 여자들을 좋아한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일까. 힘든 일은 늘 있고 또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삶이지만, 포기가 빨라 다 관두고 숨어버리는-살던 대로 살아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19년 동안 적을 두고 살아온 동네를 쉽게 버릴 수 있는. 그 이유가 오롯이 자신 때문인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 『다정한 유전』에는 자신에게 솔직하면서 내 주변 여성들에게 관심 또는 애정을 쏟는 여자들이 나온다. 소설을 쓰는 두 친구 이선아와 김지우, 남자친구에게 당한 폭력 때문에 병원에서 지내는 김지우와 그의 묘연해진 행방을 찾아 두려움과 맞서는 이, 이선아의 소설을 처음 읽어준 대학 교수 김지우, 백일장 참가자 자리를 두고 글로써 경쟁하는 김민영과 이진영 등, 그들은 직접 서술자가 되었다가 돌연 사라졌다가 다시 서술자의 객체가 되기도 한다. 

  모두는 느슨하게 연결되어(작가의 말에 적힌 표현을 빌려)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세계들을 만나게 한다. 정세랑의 소설 『피프티 피플』처럼 단락을 읽다 보면 연결되는 인물들을 발견하게 되는 구조는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그렇게 얽혀있기도 하고, 같은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서술하기도 하지만, 같은 인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다가 끝에 가서는 서로 다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연결된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하며 읽다보면 조금은 힘들게 읽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이가 누군지,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를 분명히 하는 과정은 이 소설 속에서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다정한 유전』 속 서술자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여자들의 이야기에 특히 다정하고 마음을 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들의 아픔에 내 일처럼 나서 해결하려 드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중략)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삶에는 어떤 영향도 없을 거야. 그렇지? 그리고 반대로, 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역시 그 세계에서는 의미가 없겠지. 이미 너희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너희 글을 읽는 건…… 모르겠어. 그 세계들이 만나는 일 같다고 느껴졌어. 

-p70

(중략) 너무 내 것이라서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어떤 마음 때문에, 나는 너희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내 마음이라면, 나는 이걸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 방식으로 우리가, 몰랐던 마음들이 만난다면, 그것으로 나는 새로운 것을 알 수 있게 되겠지.

-p72

  책에서의 해당 구절은 한 편씩 글을 쓰고 그 중 가장 좋은 작을 뽑아 그 사람에게 백일장을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 민영과 진영의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것’에 함께하는 한 친구가 쓴 글이다. 그는 소설을 쓰는 재주가 없어 그것을 대신하여 친구들의 글에 감상평을 써준다. 하지만 저 구절을 읽으며 비단 소설을 쓰는 것과 비평을 하는 것 사이의 간극만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느꼈다. 

  닿을 일 없던 여자들이 아픔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 그간 알지 못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경했던 감정들이 너무 내 것처럼 느껴지던 날이 떠오르는 듯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왜 대부분 여자일까. 불편한 것에 목소리를 내는 여자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그건 우리들만이 겪어왔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라, 겪어본 적은 없지만 듣고 나면 너무 내 마음이라서, 그건 사랑이든 증오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들에게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그 전으로 돌아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가해자는 너무 쉽게 그것과 작별해 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 하더라도 자주 또 깊게 연결되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정확한 지점은 알 수 없어도, 그 과정에서 각자의 모습이 뚜렷해짐을 알 수 있다.

  삶 속에서 만나는 각자의 이야기가 거대한 소설의 한 부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와 밀접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강화길 작가는 그들의 세계를 연결하며 자신의 세계와도 연결되어졌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의 세계는 어떤 실로 이어져 묶고 엮이며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무언가는 우리의 세계를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이끌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