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곽은미 감독

대자보를 쓰는 여성들

해당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에 첨부된 사진은 모두 ‘네이버 인디극장’이 출처임을 명시합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빠르게 걸어온다. 목적지는 대자보 앞. ‘나는 교비를 횡령한 적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한 교수가 쓴 대자보를 읽고, 이어서 출석 요구서를 펼쳐보는 ‘혜리’. 인상을 찌푸린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혜리는 대학교의 한 동아리 회장이다. 정확히 어떤 동아리인지 보여주진 않지만, 대자보를 쓰기위해 만들어진 동아리로 추정된다. 

신입생 ‘지현’

동아리방으로 들어온 혜리에게 먼저 와있던 동기 ‘민영’이 신입생 ‘지현’을 소개시켜준다. 둘은 교양 팀프로젝트에서 만난 사이로, 지현이 해당 동아리에 관심을 보여 가입을 하고자 민영이 그를 이곳에 데려오게 된다. 출석 요구서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혜리는 지현에게 영 신경이 가지 않고, 이에 대해 민영과 얘기를 나눠보려고 하지만 그는 지현을 챙겨주기 바쁘다.

혜리의 동기 ‘민영’

이들은 각자 대자보에 쓸 내용을 낭독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민영은 노래를 개사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사에 담았고, 혜리가 써 온 글에는 이와 반대로 다소 무게감이 느껴지는 경고가 담겨있다. 이에 감명 받은 지현은 혜리가 써온 글로 자신의 첫 대자보를 쓰게 된다. 

민영과 혜리 사이의 다툼으로 인해 그들 앞에 보여진 출석요구서에, 지현은 겁을 먹고 동아리 가입을 고려해본다는 말과 함께 동아리방을 나간다. 예상되는 많은 불이익을 감당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히 어려운 일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교수의 부당함에 맞서 이를 행하는 것은 더욱이 그렇다. 큰 용기를 내야하는 일 앞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두려움과 그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를 위해, 또 서로를 위해 솔직하게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이들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혜리 역을 맡은 윤혜리 배우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독립영화에서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다작 배우이다. 친구의 자취를 따라 그의 행적을 쫓아가는 <안부>에서의 ‘주영’은 <대자보>의 혜리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적극적인 모습은 덜하지만, 배우 자체가 가진 차분한 톤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출연한 작품인 <어제 내린 비>는 제 19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현재 상영 중이다(네이버 시리즈 온에서 7/1까지 온라인 상영). 해당 작품에서 윤혜리 배우는 <대자보>에서의 진중한 모습과는 다르게 조금 익살스럽고 장난기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맡은 역할마다 그가 가진 힘으로 다양한 배역들을 무던히 소화해 내며 극을 끌어가는 윤혜리 배우의 연기는 이 외에도 영화 <상주>, <돌아오는 길엔>, <기사선생>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본문에 언급된 <대자보>, <안부>는 네이버 인디극장 기획전 [독립영화가 사랑한 배우들]에서 상영 중이다.

https://tv.naver.com/v/14373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