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 — 여성이 권력을 지닐 때

더 포스트 — 여성이 권력을 지닐 때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수많은 청년이 타국으로 가 젊음을 바치고 있던 1971년,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를 발표해 미국의 민낯을 까발린 사건 속 중심엔 여성이 있었다. 

  남편의 자살로 워싱턴포스트의 회장직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물려받게 된 ‘캐서린’은 무엇보다도 자금난에 시달리는 워싱턴포스트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그 앞엔 회장으로서의 벽이 아닌 여자로서의 벽이 놓여 있다. 밤낮으로 공부해 이사 회의에 들어가도 남자들만 가득한 회의장 안에서 캐서린은 하려던 말도 채 다 하지 못한다. 캐서린이 주식 가격을 결정하는 회의에 들어갈 때도 문밖엔 회의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들이 서 있고 문을 열자 남자들만 존재한다. 당시 미국엔 부부 동반 모임에서 정치, 경제 등의 무거운 얘기가 나왔다 싶으면 여자들은 다른 방으로 가 그 얘기에서 빠져줘야 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었다. 그 안에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지니고 있던 캐서린의 괴리감은 당시의 성차별을 더욱 직시하게 만든다. 

이런 괴리감에서 벗어나 캐서린을 워싱턴포스트의 ‘여자’ 회장이 아닌 ‘회장’으로 만든 것은 펜타곤 페이퍼 보도 결정이었다. 뉴욕 타임스가 한발 앞서 보도했던 펜타곤 페이퍼엔 미국의 민낯이 적혀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에서부터 닉슨 대통령까지 4명의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서 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미국의 패전’이란 불명예를 얻기 싫어 사실을 외면하고 국민을 희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에 국가의 안보를 위협했다는 이유로 후속 보도 중지 명령을 내린다. 그 후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한 워싱턴포스트엔 두 가지의 선택이 남는다. 국가의 명령을 따라 이를 보도하지 않고 회사를 지킬 것인가. 혹은 회사를 잃을 수도 있지만 이를 보도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전할 것인가. 
  양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캐서린은 보도 결정을 내린다.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겠단 결정을 한 것이다. 반발하는 이사진에 캐서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여긴 더는 내 아버지의 회사도, 내 남편의 회사도 아니에요. 내 회사죠. “

  우린 여성이 권력을 지녔음에도 그의 의사를 존중해주지 않고 그 선택을 헛소리 취급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혹은 여성의 관심사는 사교에만 있고 정치, 경제는 남성의 분야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국회에 원피스를 입고 오자 그동안 그가 제시했던 수많은 의제엔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그의 옷차림만을 지적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남성 국회의원이 캐주얼한 옷을 입고 왔다면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았을까? 아마 아무도 이 정도까진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은 싸워야 할 상대가 많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많은 장애물은 물론 여성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달려드는 이들과도 맞서야 한다. 그러나 여성이 권력을 지녔을 때 그와 연대할 여성들은 그 뒤를 지켜주고 있으며 그의 올바른 길을 지지할 것이다. 캐서린이 국가와의 재판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던 길거리의 여성들처럼 말이다. 이제 권력을 지닌 여성은 억지로 자신의 발을 잡는 자들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