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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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난 뭔가를 건너왔고 돌아갈 수도 없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날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페미니즘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충격적인 영화였다. 그 때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지금 보았으면 좀 달랐을까? 그래, 어쩌면 조금. 하지만 진한 감동과 여운은 여전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역시 주인공 델마의 변화다. 델마는 루이스와 여행을 떠나기 전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리숙하고 순종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말을 하지 않고 뛰쳐나올 정도의 배짱은 갖추고 있었을뿐더러, 종국에 자신을 강간하려던 남성을 죽인 루이스 덕분에 도주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에는 당장 돌아오라며 소리를 지르는 남편에게 ‘엿이나 먹어’라며 전화를 끊어버리게 된다. 델마는 그 이후로도 거침없이 변화한다. 돈을 잃고 우는 루이스의 손목을 먼저 붙잡아 일으키고, 강도짓을 저지른 후엔 광활한 도로를 달리며 늘 그렇게 살았던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꼭 돈이 아니라 자유를 쟁취한 사람들처럼.

델마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뭔가를 이미 건너왔고 돌아갈 수도 없어’, ‘난 그냥 살 수가 없어’. 자유를 알게 된 이상 억압받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것처럼 깊은 공감을 느꼈다. 많은 여성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나 스스로가 페미니즘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미 깨달아버린 이상은 돌아갈 수 없다. ‘확실하게 깨어있어. 한 번도 이렇게 깨어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모든 게 달라 보여. 새로운 게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라는 델마의 대사 또한 같은 바를 시사한다.

델마의 변화와 함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단연 영화의 페미니즘적 성취다.(사실 델마의 변화 또한 페미니즘의 범위 내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에야 여성 주연 영화가 이전보다는 확실히 많이 제작되고 있지만, <델마와 루이스>가 개봉할 당시만 되었어도 여성이 운전대를 잡는 영화조차 흔치 않았다고 한다. 틀에 박혀있던 여성 캐릭터들이 직접 총을 쏘고, 기꺼이 무법자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며 도로를 달리고, 끝내 그 자유를 잃을 바엔 죽음을 택하겠다는 호탕함 내지 결의가 당시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충격을 주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영화 속 남성 캐릭터들도 그렇다. 델마와 루이스를 끝까지 믿어준 슬로컴브 형사를 제외한 영화의 남성 캐릭터들, 대표적으로 델마의 남편 ‘대릴’이나 델마가 중간에 만난 ‘J.D’, 델마와 루이스를 계속해서 희롱하다 호되게 당하는 트럭 운전사 같은 인물들은 남성 주연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소비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소비된다. 어떠한 변화나 깨달음이 없는 납작한 캐릭터들로 오직 델마와 루이스의 서사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의미다. ‘대릴’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한 가부장제에 찌들어있고, ‘J.D’는 몸과 얼굴로 델마를 꼬인 뒤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일명 ‘꽃뱀’이라 불려온 여성 캐릭터들의 설정과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 성별의 전환으로 인한 ‘미러링’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델마와 루이스가 택한 죽음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단단하고 희망적이며 어떠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분명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고 있는 이 엔딩을 마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믿었고 또 앞으로도 믿을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분명히 본인들이 바라던 바와 같이, 어디선가 다른 이름들로, 큰 목장이 있는 집에서 살며 종종 바닷가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