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 –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언어에 주목할 때

<메기> –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언어에 주목할 때

이옥섭 감독의 영화 <메기>는 여러 주제를 감독의 독특한 시선으로 참신하게 풀어낸다. 믿음과 불신, 청년실업, 싱크홀 등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제들이 메기에선 마치 원래 하나였다는 듯 어우러진다. 본 글에선 메기의 여러 주제 중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중점으로 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메기의 주인공 ‘윤영’이 일하는 병원에서 성관계하는 모습이 담긴 엑스레이 사진이 유출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병원 사람들은 사진을 찍은 사람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누가 찍혔는가. 그것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윤영은 혹여 자신의 사진일까 하는 마음에 자꾸만 움츠러들고 병원을 관둘 결심까지 한다. 이런 윤영이 결심을 거두고 다시 병원에 다니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계기는 병원의 부원장인 ‘이경진’의 퇴사 권유이다. 윤영을 위하는 척하며 은근히 퇴사를 권유하고 뒷문으로 나가라고 말하는 이경진 부원장의 태도는 한국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와 닮아있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잘못한 것은 없음에도 성범죄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이런 사회의 분위기는 피해자를 위축시킨다. 

<메기>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뒤집는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줌으로써 가해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박탈한다. 이는 윤영의 애인인 ‘성원’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성원은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다. 성원의 전 애인인 ‘지연’은 윤영에게 성원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음을 고백하고 윤영은 계속해 성원을 의심하게 된다. 이에 결국 윤영은 지연을 믿고 성원에게 여자를 때린 적이 있냐고 묻는다. 성원은 태연하게 ‘전 여친 때린 적 있어’라 대답한다.

우리가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가 성원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는단 것이다. 성원은 왜 전 애인을 때렸는지 변명할 새도 없이 싱크홀에 떨어진다. 관객은 이런 전개에 당황하게 되는데, 우리가 줄곧 미디어에서 접한 가해자의 폭력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미디어에선 전 애인이 잘못해서, 실수로, 술에 취해서 등 친절히 가해자에게 변명의 기회를 제공했다. 미디어 외의 사회에서도 피해자의 고통보단 가해자의 변명에 귀 기울여주었다. 앞길이 창창한 대학생, 부양할 가족이 있는 가장, 평소에 성실한 모습을 보인, 이러한 수식어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자주 부여됐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에 이옥섭 감독은 ‘사회에서 가해자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줬으니 메기에서만큼은 가해자가 변명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며 가해자의 목소리를 지운다. 

근래에 발생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인 안희정, 박원순 사건과 그 외의 다른 성범죄들에 대해서도 사회는 가해자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피해자가 범죄를 당할 만했던 건 아닌지에 집중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때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순간 가해자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있든 없든 범죄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피해자의 고통은 변명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메기>에선 다음 문장이 반복해 등장한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이 문장과 같이 우리가 성범죄라는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하는 것은 가해자의 서사를 찾아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얼른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구덩이 속의 핵심인 범죄 그 자체를 직시하고 구덩이를 판 사람이 누군지에 주목해야 한다. 구덩이를 파헤칠수록 얻는 것은 범죄 사실관 상관없는 가해자의 무의미한 정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