몫, 최은영

몫, 최은영

글과 함께 자란 여성들

  먼 훗날 지금의 나를 떠올린다면, 그 때의 나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 많은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낄까. 아니면 잘 하고 있다고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을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헤매고 있을 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며 갈피를 잡는 일은 다른 누구의 응원보다도 스스로에게 꽤나 큰 자신감을 실어준다. 

  요즘같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나에게 집중할 기회가 늘어난 시기에,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삶의 주체가 정말 나였는지 생각해보는 일은 달라진 삶에 적응하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꼭 거쳐야하는 과정 같다. 나를 기준으로 두고 사는 삶이란 매우 어렵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향하며 솔직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몫』 속의 인물들을 통해 비슷한 갈래의 고민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당신은 울면서 글을 썼다. 마음이, 당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붙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그때 알았다. -p.35

  같은 대학교 교지 편집부인 정윤, 희영, 해진은 함께 글을 쓰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해진은 교지에 실린 선배 정윤의 글을 읽고 교지 편집부에 들어가게 된다. 동기 희영과 함께 교지에 실릴 아내 폭력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처음으로 써야만 해서 쓰는 글이 아닌,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을 쓰게 되고 남편에게 살해되거나 남편의 폭력을 막기 위해 남편을 살해해야만 했던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 순간 해소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해진은 이 분노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을 앗아간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면서도 편집부에 남기로 결정한다. 

  글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런가…… 내가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보는 일보다 글 쓰는 게 더 숭고한 일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누가 내게 물으면 난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 -p.58

  희영은 기지촌 활동가들이 만든 소식지를 읽으며 졸업 후 기지촌 활동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해진은 희영의 집필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후에 기지촌에 속해있는 희영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고 희영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희영은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행복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된다.  

  해진은 해소되지 못하는 분노에 스스로 잠식되고, 아내 폭력에 관한 기사를 작은 주제라며 문제 삼는 편집부 선배의 말에도 왜 이 문제가 다뤄져야하는지를 끝까지 얘기했다. 자신이 취재하고 만든 글에 정성을 다했고, 그래야하는 이유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치열히 글을 썼던 기억은 힘들지만 계속해서 편집부 일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 해진은 글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언론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희영과 해진은 어떤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아니다. 삶을 하나의 결과물로 보지 않는다. 대신 매 순간을 정성스럽게 산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려 노력하고,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보며 그에 맞는 행동으로 나를 속이려 들지 않는다. 소위 ‘척’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자신에게 솔직하며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이란 매우 힘들지만 희영과 해진을 보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