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 여성이 가족의 중심이 될 때

『시선으로부터,』 – 여성이 가족의 중심이 될 때 

또래 여자 친구들과 제사 얘기를 한다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들은 무엇일까. 여자인 이유로 쉬지 못하고 계속 주방에 서 있는 엄마, 여자들이 차려준 다과상을 먹으며 TV 앞을 떠나지 않는 남자 가족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돼~’ 소리를 듣는 나의 친구들. 대부분 차별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시선으로부터,』의 제사는 우리가 아는 기존의 제사와 다른 결을 띄고 있다. ‘심시선’이 죽은 이후로 10년간 제사를 지내지 않던 시선의 가족들은 장녀 명혜의 주도로 인해 첫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게 된다.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아들의 집에서 지내는 한국의 k-장례가 아닌, 온전히 심시선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제사이다. 시선의 가족들은 집에 틀어박혀 불편한 분위기 속에 음식을 차리고 시선의 사진 앞에서 절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선이 젊었을 때 살았던 하와이에서 머물며 가장 행복했던, 소중했던 것들을 기일에 가져와 그것들의 의미를 설명하고 시선을 기억한다.

이런 제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중심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시선의 가족에서 남성의 발언권은 작다. 목소리가 더 크고 이야기를 주도해가는 것은 여성이다. 가족의 비극을 부정하던 첫사랑과 망설임 없이 헤어진 장녀 명혜,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명은, 여성 혐오 범죄를 당한 화수, 미국에서 괴물 디자인 작업을 하는 우윤, 박새를 가장 좋아하고 환경에 관심이 많은 막내 해림까지. 여성의 서사가 이만큼 다양한 이야기는 여성 서사에 목말라 있는 독자들에게 종합선물세트처럼 다가온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우리 모계사회잖아’라는 말이 이다지도 와닿을 수 있을까.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 안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시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시선’의 삶이다. 시선은 하와이에서 화가 마티어스 마우어(m&m)를 만나 함께 독일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친 것은 화가로서의 교육이 아닌, 동양인을 동물 취급하는 서양인들과 자신을 키링처럼 전시하고 다니는 m&m의 본모습이었다. 이런 시선의 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내용 전반에 걸쳐 시선의 가족 개개인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진다. 시선의 가족들은 엄마, 할머니인 시선의 삶을 복기하며 대신 웃기도, 울기도, 화내기도 한다. 

“할머니는 그 정도의 악의는 상상하지 못했던 거야. 그런데 우리는 할 수 있지. 21세기 사람들이니까. 그런 악의가 존재한다는 걸 알지.” -p143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여성 서사에 필요하다고 말한 것들을 담고 있다. 과거의 여성들이 겪었던 차별이 잊혀지지 않고 수면 위로 끌어올려져 현재의 여성들이 이를 고발하고, 다시 연대하는 것. 그리고 미래의 여성들이 이 연대의 가치를 계속해 가져가는 것 말이다. 지난달 발생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피해자와 연대하기 위한 언어로 『시선으로부터,』 의 문장을 활용한 것에서 우리는 연대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연대의 가치를 찬양하는 글을 마친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p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