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개월, 남궁선 감독

십개월, 남궁선 감독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삶

남궁선 감독의 영화 <십개월>은 게임 개발자인 최미래(최성은 분)가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임신을 하게 된 후, 10개월 동안의 일을 그린 작품이다. 미래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많은 변화와 마주하며 스스로도 변해간다. 이는 보통의 성장 영화가 가진 구조처럼 보이는데,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임신과 성장을 엮어 목적이나 수단으로 전락시키거나 흔하게 대상화된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임신부를 주체로 하여 임신이 불러온 변화에 순응해야만 하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일상은 어떻게 이들에게 무력감을 주고 매 순간 좌절하게 만드는지,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매우 끔찍한 그 일상을 극히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임신 기간에 상관없이 여성들은 시작부터 정형화된 모성애를 강요받고, 나아가 여성이 변화의 지점마다 마땅히 취해야 하는 태도를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 또한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달라진 거라곤 자신의 몸에서 생명체가 자라고 있는 것뿐인데, 미래는 마치 큰 제약이라도 생긴 듯 매 순간 임신 전과 같이 행동할 수도, 생각할 수도, 같은 대우를 바랄 수도 없게 된다.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세상 모두가 그를 아주 많이 다르게 대한다.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옳은 수순인 양 지워지는 모습과, 하루아침에 자신이 아는 엄마의 모습이 되길 강요하는 남자친구의 태도는 우리가 여타 미디어를 통해 흔히 봐왔던 장면들이지만, 십개월에는 미래가 주체인 영화라는 점에 충실하면서도 임신 후 여성이 겪게 되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정신적 혼란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극 중 미래가 직장 동료에게 갑작스러운 고백을 받고 즉흥적으로 키스를 해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미래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에 순응하는 동료는, 이후 미래의 임신 사실을 듣자마자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어떤 일에도 늘 당당하고 작아지는 일이 없었던 미래가 욕을 내뱉으며 자신을 심히 자책하는 모습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으로 인한 일탈 또한 임신부에게는 매우 금기시되는 행동이며 임신이 미래 스스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신 가능성을 묻는 약사에게 미래는 “제 뱃속에 살 수 있는 건 카스랑 하이트밖에 없는데요”라고 말하거나,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산부인과 의사에게 뱃속에 아기가 아닌 다른 게 자라고 있을 가능성을 물어보는 등, 영화의 전반부부터 중반부까지의 미래, 즉 임신 초기의 미래는 임신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임하지 않는다. 그것이 미래의 성격임과 동시에 진지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는 임신을 인생에 있어 예상치 못했던 난관, 해결해야 할 문제쯤으로 여긴다. 누구에게나 임신이 당연하게 기쁘고 축하받을 일은 아니다. 이는 가임기 여성이라면 으레 겪을 수 있는 일일뿐더러 가임기 여성은 전체 여성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국의 1/4이 겪는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임신은 여성의 엄청난 책임과 희생을 수반하는, 우리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대단한 일이다. 누군가의 임신을 부정하는 말은 감히 누구도 하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임신이 고귀한 것, 축복받아 마땅한 것으로 포장됨으로써 우리는 임부와 산부에게 가해지는 각종 혐오와 차별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모성애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강요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정당화시키고, 여성의 주체적인 생각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나 축하받을 일이 될 수 있을까? 임신은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큰 변화이다. 

임신 중절을 하나의 해결방안으로 놓고 고민하는 미래의 모습도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이에 남궁선 감독은 오디오클립 ‘이화정의 전주가오디오(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852/clips/43)’에서 중절은 어찌됐든 불법이고, 불필요하게 잔인한 이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중절이 선택이라고 부를만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는 구절이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여성의 선택으로 인해 그들이 받게 되는 각자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상하리만치 과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여성의 고통은 공감 받지 못하며 다분히 감성적이거나 약한 사람을 만든 채로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 돼버린다.

삶은 늘 변화의 연속이고 우리 사회에선 그에 따른 뛰어난 적응력이 큰 능력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크고 작은 사회 속에 던져진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고 그렇게 살아갈 때 인정받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같은 맥락으로 임신이라는 변화 또한 일상 속 변화의 한 종류일 뿐이다. 그 대상을 임산부로 국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더 많이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 <십개월>은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상영작으로 개봉 일자는 미정인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