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자들>

<어떤 여자들>


눈으로 뒤덮인 산과 구름 낀 하늘. 황량하고 넓은 벌판과 겨울의 색을 띄는 풍경, 기차는 일정한 속도로, 한 번씩 리듬을 깨는 긴 기적소리를 내며 그 풍경 사이를 지나간다. 그리고 그 가까이에 어떤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동하고, 머무르고,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어떤 여자들>은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로 분리되어 있지만, 이야기들은 느슨한 연결점으로 이어져 있다. 흘러가는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결코 ‘하나’가 아닌 ‘어떤’이라는 불분명한 수식어가 확실한 정의임을 깨닫게 된다.


첫 번째 – 로라의 이야기. 로라는 애인과 섹스를 하고 난 후 직장에 갈 준비를 한다. 남자는 썩 무덤덤하게 옷을 입고 나가고 남겨진 로라가 거울에 비춰진다. 변호사인 로라는 일터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풀러 씨를 만난다. 풀러는 사고로 직장을 잃어 피해보상금을 얻기 원했고, 로라는 그에게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매우 지쳐있었다. 그러다 로라는 풀러와 함께 나이 든 중년 남성 변호사를 찾아가게 되고, 풀러는 그 변호사의 말에 억울한 내색을 보이더니 알았다며 수긍한다. 로라는 몇 분 되지도 않은 자리에서 알았다며 나가는 풀러의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로라는 나가기 전 남자 변호사와 인사를 하며 말한다. “제가 8개월 간 그 얘기했는데, 이제 아시겠다네요.” 그리고 돌아온 차안에서 로라는 애인과 통화하며 터놓는다. 내가 남자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두 번째 – 지나의 이야기. 지나는 흐르는 냇가를 따라 홀로 걷다가 가족이 있는 텐트에 도착한다. 지나의 가족은 꽤 단절되어 있다. 그의 남편은 로라와 섹스를 하던 남성이고, 남편과의 대화는 어긋난다. 딸과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원하는 곳은 딸에겐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일 뿐이다. 지나의 속은 모른 채 중재자 노릇을 하는 남편을 보며 지나는 말한다. “당신은 나를 나쁜 엄마로 만들어.”

지나는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에서 집을 지어 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노년 남성의 집 앞에 쌓여있는 사암들을 가져가길 원한다. 지나는 그에게 저 돌을 치우고 싶으시다면,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노인은 지나의 말을 도통 듣지 않으며 사암과는 상관없는 얘기를 늘어놓다가 이내 사암을 주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집짓는 일에 대해서 말할 때 노인의 시선은 노골적으로 남편에게 가있다. 대답은 지나가 하고, 대화에 노력하고 있는 것도 지나 임에도 시선의 대상은 그의 남편이다. 집을 나서며 남편은 노인에게 명함을 준다. 노인은 명함을 받아들고 말한다. “아내가 직원이군요. 재밌네요” 그리고 남편이 대답한다. “아뇨, 사실은 아내가 상관이죠.”


세 번째 – 목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 영화 내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그”는 겨울 일자리로 말을 돌보는 일을 한다. 그러다 그는 교외 야간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베스를 만나게 된다. 베스의 첫 강의가 끝나고 둘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게 된다. 베스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을 구했는데 이렇게 먼 곳인지 몰랐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베스의 이야기를 듣는 그에게서 잔잔한 미소가 서린다. 그러나 베스는 그가 목장 관리사라는 사실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둘은 같은 식당에서 짧게 잘렸던 이야기를 이어서 나눈다. 그리고 신발 장사를 하게 될까봐 두려웠다는 베스에게 그는 자신의 말을 데리고 와서 태워준다. 베스는 그의 친절함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더 가까워진 채로 헤어지지만 다음 수업 시간에 베스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발견에 설레고, 기뻐했지만 결국 다시 개척지 밖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목장을 관리하고, 원래 속도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이 영화는 남성의 전유로 여겨지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여성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것은 의도치 않게 분리되고, 의도적으로 분리되는 일상의 순간들이다. 그러나 결코 세 이야기를 단순한 교집합으로 이끌어내 이들을 ‘하나’라고 말하게 하지 않는다. 그저 여성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계속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관계 속에서 엇갈리는 대화와 철저히 단절되는 순간, 홀로 외로이 떠도는 시간을 담담히 보여주며, 위로를 건넨다. 각자 고립되고 처해있는 상황을 그들의 얼굴로, 겨울의 풍경으로 들여다보며 가히 설명하려들지 않는다. 그렇게 어떤 여성들의 이야기는 느슨한 연결점으로 막힘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