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윤이형

페미니즘의 당위성에 대한 고민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170페이지가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사적으로 연결돼있다. 여자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그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여성 간의 연대만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자주 화두가 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 준다. 페미니스트의 기준 또는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품의 후반부에 가면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나는 그보다 헤어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하고 있지만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하는 ‘지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지현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바람과 그 친구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는 못했다. 그냥 회사에 다닌다고 얼버무렸다. -p.36

지현은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린다는 뉴스를 보고 대학 동기인 미진을 생각한다. 때문에 집회에 여러 번 참석하고 그곳에서 바람을 만나 가까워진다. 하지만 탈코르셋 운동에 반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못한다. 지현이 오랫동안 꿈꾸며 이뤄낸 자랑스러운 일이 누군가의 앞에서는 숨겨야 하는 이름이 돼버린 것이다.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지현은 구분할 수가 없었다. -p.37

가끔씩 지현이 일하는 미용실에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면, 지현은 기뻤고 어떻게 티 내지 않고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머리에 많은 시간을 쏟는 여자들을 보며, 또 그들의 머리에 다양한 시술을 해주며 계속해서 여자들은 너무 심하게 아름다워지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지현은 생각의 분열과 자괴감을 느낀다.

자신이 왜 광장에 나가는지 지현은 알고 있었다. 설령 여자들에게 불필요하고 비싼 파마를 수시로 권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p.40

반복되는 고민 속에서도 지현은 계속해서 집회에 참석한다.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는 꾸밈 노동을 부추기는 사람일지라도, 지금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불법촬영 근절 의제에 집중해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한 가지 모습으로 정의될 수 없다. 지금도 지현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어쩌면 고민 끝에 답을 찾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붙여진 수식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비난받지 않는 이들과 함께라면 목소리를 내는 일도, 불편함을 바꿀 수 있는 용기들의 모양도 더 다양해질 수 있다. ‘내 행동이, 모습이 페미니즘에 부합할까? 누군가에게 비난받을만한 모습인가?’ 끊임없는 자기검열 보다,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찾고 정의하는 일 보다, 다양한 페미니즘의 모습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나누고 듣는 일이 우리에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