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쇼코의 미소

최은영,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중 <쇼코의 미소>

*짧은 감상과 단상의 글입니다.

증오할수록 벗어날 수 없게 돼. p.27

가족- 어떤 이가 사는 곳은 미움의 소리로 뒤덮여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차거나, 시선의 교환이 끊겨 오랫동안 쌓인 침묵으로 존재한다. 태어나면서 결성된 그 무리는 다른 이들과 쉽게 구별되면서도 단지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는 안일함 때문에 가까이에서 가장 먼 사이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곳에서의 사랑을 떠올린다. 아마도 만지고 싶지 않게 터지고,허물어진 상태일 것이다. 그러곤 증오와 연민, 미움 같은 것들이 긴 시간동안 버무려져서는 이상한 형태로 굳어져 있을 것이다. 이 감정이 지니는 복잡한 층위에 서있는 나는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를 타고났다는 사람의 존재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좀먹으며 살아왔고 이내 곧 현실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무기력했고 가끔씩 정신이 맑아질 때는 내가 내 정신을 연료로 타오르는 불처럼 느껴졌어. p.41

쇼코의 미소에서 인물 간 관계의 층위는 겹겹이 존재한다. 쇼코와 소유, 그리고 각자 그들의 가족. 관계 속 모든 인물들이 내게 던져오는 말은 많았고, 그렇게 한참을 나의 비대한 오만함을 도려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 제쳐두고 그저 쇼코라는 사람이 버둥거렸을 시간에 대해서만 바라보고 싶었다. 글의 화자로 등장하는 ‘나’, 소유의 시선으로 써진 쇼코는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엇이든 해볼 것이라고 버릇처럼 말한다. 쇼코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또한 그가 죽어버렸으면 한다. 쇼코의 곁에서 대꾸도 없이 애정을 쏟으며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의 존재로부터 언제든지 벗어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런 쇼코에게 쉽게 동조하고 만다. 그가 그 울타리를 증오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또 벗어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타인을 예의바른 미소로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쇼코가 소유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편지에 써내려가기 전부터 그의 말과 행동에 기시감이 느끼며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쇼코는 그렇게 증오하는 할아버지를 간병하고, 빌딩숲을 노래하면서도 도쿄로 떠나지 않았으며, 재빨리 안전한 직장을 택했고, 태어난 고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소유의 말로, 쇼코의 편지로 그의 모습이 전해질 때마다 나는 그저 끄덕거리는 침묵의 고갯짓으로 그를 대했다. 그건 슬픔도 연민도 아니었으며 내겐-쇼코의 세상과 닿아있지도 않으면서도 부풀어진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결코 사랑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주는 것이라도 해도, 벼랑 끝에 있는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그 사랑을 좀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 사랑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지만 서있을 수 있게 한다. 결국 살게 해준 사람에 대해서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과연 내게 있을까. 사랑과 증오는 훨훨 타오르는 것으로 닮아있지만, 증오로 점을 찍어버린 감정의 끝은 곧 나를 소진시키며 존재를 흔들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벗어날 힘이 없을 땐 울렁이는 모순을 견디며, 분류와 단죄의 행위를 멈추고서는 가만히 존재해야하는 순간이 있다. 혼자 남아서는 안 될 같은 그 순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