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이, 로레와 미카엘

<톰보이> 로레와 미카엘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온 로레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집을 나서다 리사를 만난다. 리사는 머리가 짧고 바지를 입고 있는 로레를 남자로 오해한 듯, 로레에게 남성 문법을 사용해 말을 건다. ‘새로 이사 왔니? 난 리사야.’ 

로레가 ‘여자’친구를 사귄 것에 기뻐하는 엄마, 자신의 언니가 남자인 척을 한다는 것을 몰랐는데도 눈치 빠르게 대처하는 잔은 로레가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뛰어 노는 것이 좋은 로레는 자신의 성별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새 마을에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가 자기를 남자로 오해했으니, 로레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았을까. 로레는 리사가 자신을 남자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본인을 ‘미카엘’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리사는 로레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대여섯 명 쯤 되는 남자애들은 로레를 ‘미카엘’로 알고 함께 놀기 시작한다. 잡기놀이를 하는 중 리사는 로레에게 ‘너가 지금 나를 이기면 쟤네가 널 좋아할 거야’라고 말하며 무리에서 로레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로레에게 리사는 일종의 조력자인 셈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로레가 점점 무리에 적응하는 동안 리사는 로레를 ‘조금 다른 애’로 인식한다. 여느 남자애들처럼 활동적이지만 자신에게 성적인 농담은 하지 않고, 주장이 강하지 않지만 약해보이지도 않는 로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모두가 자신을 미카엘로 오해하고 있는 상황. 로레는 또래 남자애들처럼 하기 위해 열쇠를 매달아준 분홍 끈을 흰색으로 바꾸기도, 원피스 수영복을 잘라 삼각 수영복으로 만들기도, 찰흙으로 가짜 성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온전하게 ‘미카엘’의 모습을 갖추자 로레는 남자애들과의 놀이에서 쭈뼛대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된다.

 그러나 만약 로레가 본인을 미카엘로 속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리사를 비롯한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답변이 된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때의 여아와 남아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그 말은 리사도 함께 축구를 할 수 있고, 몸싸움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리사가 여자라는 이유로 놀이에 끼워주지 않고, 리사는 본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에는 이러한 리사와 로레가 대비되는 장면이 크게 두 개 정도 있는데 바로 축구와 수영 씬이다.

축구를 하는 남자애들을 함께 지켜보는 로레와 리사. 로레는 관심이 없는 척 리사와 함께 있다가도 남자애들이 어떻게 노는지 지켜본 후 금방 그 무리에 스며든다. 하지만 리사는 여전히 벽에 기대 남자애들이 노는 것을 지켜만 본다. 다 같이 수영을 하는 씬에서는 로레는 자신의 몸을 당당히 드러내지만 리사는 몸을 가린 수영복을 입고 있으면서도 팔로 몸을 감싼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확연히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둘을 보자면 남자로 보이는 아이와 여자로 보이는 아이가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되는지가 느껴진다. 결국 같은 여성임에도 어떻게 보이냐에 따라 기본적인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로레와 리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로레로 인해 동네 여자애들이 함께 모였을 때도 남자애들은 몸을 부딪히며 뛰어 놀지만 여자애들은 바닥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로레의 동생 잔은 로레가 미카엘이라서 좋다는 말을 하며 직접적으로 남성이 가진 우월함과 편리함을 전달한다.

이러한 상황들을 겪으며 로레는 자기가 확실하게 남자로 보이지 않으면 놀이에서 빠져야 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삼각 수영복을 입고 그 안에 찰흙으로 만든 성기를 넣어 로레가 아닌 미카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바라던 재미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카엘은 로레의 모습이 드러나자 순식간에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남자애들과 같은 위치에 서있는 것을 넘어 무리의 친구를 제압할 수도 있었던 뉴페이스 미카엘은 순식간에 여자 로레가 되고, 여자임을 그들에게 증명해야만 하는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동시에 리사는 ‘너 그러면 여자랑 뽀뽀했던 거네? 역겨워!’라는 말을 듣게 되어 결국 여성이라는 그리고 이성애 규범 속에 속하지 않은 소수자인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로레에게 같은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영화 <톰보이> 속 로레와 미카엘 그리고 리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여성성과 남성성은 견고하게 쌓여져 벗어날 수도 새롭게 바꿀 수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있는, 사실은 아주 허술하고 모호한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그럼 나도 남자가 될 수 있고 너도 여자가 될 수 있어 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회가 정해둔 허접하기 짝이 없는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에 얽매여 아이를 바라보면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훼손되고 결국은 폭력으로 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로레도 미카엘도 똑같은 한 명의 여자아이이다. 다만 미카엘은 스스로를 여성스러움에서 해방시켜 본인이 원하는 모습을 할 수 있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로레의 이름으로 시작해 로레의 이름으로 끝난다. 겉모습만 보고 로레를 남자로 생각했던 리사는 마지막 장면이 되어서야 로레에게 여성어를 사용하며 이름을 묻는다. 자기를 미카엘이라고 칭했던 로레는 이제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다. 

‘로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