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책의 제목인 「파과」 는 쓰이는 한자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여자의 나이 16세, 즉 이팔청춘을 가리키는 破瓜, 흠집이 난 과실이라는 의미를 가진 破果. 이야기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다 못해 영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가지 풀이를 밀도 있게 함축한다. 작가가 유려한 문체로 묘사하는 주인공 ‘조각’의 인생이 그렇다.

영화의 그것과 다름없는 이야기의 스케일과 세밀한 묘사, 치밀하게 던지고 수거하는 복선들의 반복을 가진 느와르 소설 「파과」의 주인공 조각은 오랫동안 살인 청부 업계에 몸을 담은 인물이다. 이제껏 많은 영화와 소설, 드라마의 소재로써 꾸준히 사랑받아왔기에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고독한 킬러’의 서사가 「파과」에서 유일무이한 특색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단연 조각의 생물학적 특성들 덕분이다. 먼저 역시 ‘여자’라는 점. 그리고, ‘예순 다섯’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 조합 해보면 65세 여성 킬러의 이야기. 다양한 여성 서사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임에도 가히 상상해본 적 없는 설정의 인물임이 틀림없다.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p.245

이야기는 약 40년 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아온 냉철한 65세 여성 킬러 조각이 노화의 과정을 겪으며 공감 능력이 거세되었던 것처럼 굴었던 어린 날의 과오를 돌려받듯 킬러로서는 금기와도 같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생경함을 서서히 감각하게 되면서 전개되는 사건들을 그린다.

그 형아가 서른여섯이고 당신이 예순다섯이라서가 아냐.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지, 무려 자식뻘하고. 남들이 알면 어울리지 않네부터 할망구가 늘그막에 정신 나가 더럽다고 손가락질할 일이지만, 늙어버린 다음엔 피차 똑같을 텐데 말야. 당신은 얼마든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할 자유가 있어. (…) 근데 자격은 없지. -p.222

오롯이 조각의 상황과 감정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이야기에는 그만큼 조각의 무던하고도 어딘가 체념조를 띤 독백들이 상당수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노인으로써’의 조각의 서술을 읽다보면 아득하고도 철학적인 공상에 빠지게 된다. 「파과」가 주제 의식처럼 반복하듯, 나 또한 빛나는 시간을 짧고, 결국엔 늙어갈 것이기 때문에. 아직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곧 경험하게 될 노인의 생애를 잠깐이나마 들여다 본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가 마냥 늘어지지 않는 까닭은, 여성이자 노인인 조각이 그에게 주어진 나이와 성별에 관련 없이 느와르 소설의 주인공답게 그가 갖춰야 할 구색을 마땅히 갖추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적인 과거, 과거로 뒤엉켜있는 인물과의 대결 구도, 옛사랑에 대한 평생의 그리움,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응시하는 행위만으로도 그 장면에 속한 것 같아 일말의 행복감을 느끼는 고독함까지. 그 클리셰적인 설정들은 인물이 가진 나이와 성별로 하여금 재정립되고 재해석될 뿐만 아니라 조각을 한층 더 특별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주는 데에 단단히 한 몫 한다. 하지만 언뜻 판타지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들 사이에서 작가는 그의 나이와 성별을 단순 클리셰를 깨부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의 여성과 노인, 특히 노인으로써 당하는 홀대를 가감 없이 보여주며 현실감을 일깨워주기까지 한다.

(…) 젊었을 적에는 여자였기 때문에 꼭 그와 같은 눈길을 받은 것이 떠올라서였다. 성별에서 나이로, 백안시하는 이유가 추가된 데 불과하다. -p.172

「파과」의 많은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듯, 나 또한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노년기 여성’이라는 자칫 소외될 수 있는 계층에 대한 여성 서사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도 맞지만, 결정적인 것은 일단 ― 재미있기 때문이다. 문장을 훑고 곱씹다 보면 역할에 맞는 배우들과 그들이 펼쳐나갈 감정선들이 눈에 그려질 만큼 입체적이고 시각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느 방면으로 살피나 이 고독하고도 특별한 ‘60대 여성 킬러’에 대한 이야기는 그 문장의 주체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