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마츠코의 일생은 지옥 같다. 달리 대체할 단어 없이 명백한 사실이 그렇다. 그 지옥문을 활짝 열어준 것은 마츠코의 아버지로, 어릴 적부터 마츠코의 동생인 마구미에게만 애정을 쏟아 마츠코로 하여금 사랑 받는 것에 대한 집착을 심어준 인물이다. 그 때부터 피어난 마츠코의 애정 결핍은 이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며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이유가 없다는 일종의 신념으로까지 변모한다. 심지어 마츠코의 그러한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 주체가 되는 남성들은 전부(그나마 수감 전 잠시 동거했던 미용사 남성은 제외할 수 있겠다) 스스로에 대한 결핍과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인물들로 마츠코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그러한 결핍들을 폭력적으로 분출하는 대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만약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의도한 바가 일본 혹은 동양의 ‘여성 원형’, 성녀/창녀 이분법(영화에서는 두 가지 모습의 마츠코를 전부 묘사한다), 가부장제 등의 여성혐오에 대한 비꼼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처참히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다. 블랙 코미디의 어투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음침하고 불쾌한 시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데, 일단 주인공인 마츠코 캐릭터부터가 그야말로 남성들이 가진 여성 판타지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의 사랑에 기반 해야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는 설정부터가 그렇고(유년기의 트라우마임을 감안해도 과하다 생각된다), 앞서 말했듯 마츠코를 성녀의 형태로 그려내는 영화의 문체는 조금 역겹다고 생각될 만큼 전형적이다. 이를 테면 마츠코의 옛 제자이자 애인인 ‘류 요이치’를 예로 들 수 있겠는데, 류는 그에게 폭력을 휘두를 뿐만 아니라 야쿠자 관련 일에 마츠코를 이용하고, 수감 생활을 기다려준 마츠코를 무참히 버리기까지 했으면서 그의 죽음을 알게 된 후엔 마츠코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마츠코는) 나의 신이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끝없는 사랑을 베풀었으며 자신을 위해 몸 바쳐 희생했다는 게 그 이유다.

다시 내용적인 측면으로 돌아와, 그렇다면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마츠코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일까. 놀랍게도 아니다. 마츠코를 진심으로 사랑한 인물은 다름 아닌 메구미다. 메구미는 마츠코가 수감 생활을 할 때 만난 친구로, 교도소를 나오고 나서도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하나 남편이 있는 메구미를 보고 스스로에게 초라함을 느끼며 연락을 끊게 된다.

메구미는 마츠코를 류로부터 떼어놓으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이후 걸인이 된 마츠코와 우연히 만났을 때에는 자신의 가게에서 전속 미용사로 일해 달라며 억지로 손에 명함을 쥐어주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메구미가 마츠코를 대하는 태도에서 친구 이상의 그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데, 메구미가 수감 생활을 할 당시 다른 수감자들과 레즈비언적 관계를 맺어왔음을 직접 보여준 것을 보아 마츠코를 애정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메구미 캐릭터는 비록 출소 후 AV 배우가 되어 감독인 남성과 결혼을 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 이후에도 마츠코를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다. 어떠한 애정이 담겨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들 말이다. 나는 그 애정이 이 영화 내에서 표현된 사랑의 형태와 가장 가까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메구미라면 마츠코의 병적인 애정 결핍을 채워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마츠코가 남성들이 아닌 메구미를 선택했더라면 그렇게나 비참한 엔딩을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