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원佳園」 다 옛날 일이다.

「가원佳園」 다 옛날 일이다.

“응, 알아. 우리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지.”

강화길의 소설집 화이트 호스 中 가원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2년 전이던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어렸을 때의 어느 순간부터 계속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우리 집은 방이 세 개 있는 아파트로 엄마와 아빠가 사용하는 안방, 오빠 방, 그리고 할머니의 방까지 하고 나면 내 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은 안방에 내 침대와 책상을 두고 생활을 했다. 머리가 큰 후엔 내 방을 가지고 싶어 거실에 커튼을 치고 책상과 침대를 옮겨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방이라고 좋은 척하며 그렇게 지냈다.
 할머니의 방은 현관 바로 오른쪽에 있었다. 언제나 티비를 틀어두셨고 오랜 시간 담배를 펴 밤이고 낮이고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을 내 방 삼아 지낼 때는 할머니의 티비 소리와 가래소리 그리고 밤이 되면 들려오는 악! 하는 잠꼬대를 매일같이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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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옛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 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할머니는 터미널 1층에서 잡화점을 했다. 조각나있는 기억들을 모아보자면, 아빠는 언제나 퇴근을 하고 할머니를 도우러 나갔다. 할머니가 가게 정리를 하면 아빠는 휴지 자판기에 휴지를 채웠는데 나는 아빠를 졸졸 쫓아다니며 휴지 박스가 절반 쯤 비워졌을 땐 그 안에 들어가 구루마를 타고 터미널을 누비는 것을 매우 즐겼다. 그리고 내가 또 좋아했던 것은 같이 살면서도 괜히 할머니 가게에 들러 인사를 하고 할머니 품에 안겨 할머니 옷에 붙어있는 반짝이를 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찾아 올 때마다 천원에서 이천 원씩 용돈을 주었고 나는 그 돈을 들고 할머니 가게 앞쪽에 있는 매점에 가서 엄마는 사주지 않는 별사탕을 사먹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였던가 엄마는 터미널 1층에서 물품보관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평일 오후에는 이모가 엄마를 도와줘서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쯤에는 엄마가 집에서 간식을 만들어 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간식을 먹고 학원을 가거나 다시 가게에 나간 엄마 몰래 투니버스를 봤다. 엄마가 퇴근할 때쯤이면 아빠도 집에 들어왔고, 아빠는 할머니 가게를 닫으러 다시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그동안 저녁을 차리고 집안일을 했다. 이쯤부터 할머니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본 할머니는 엄마를 힘들게 했다. 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였던가 하루는 엄마와 할머니가 큰 소리를 내며 싸웠는데 엄마는 울면서 집을 나갔고 할머니는 우는 나를 보며 제 엄마 닮아 싸가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할머니가 싫었다. 사실 그 전부터 싫었을지도 모른다. 거실이 내 방이었을 때는 밤이 되면 들려오는 가래 소리와 악쓰는 소리가 너무 싫었다. 할머니가 부항을 놔달라며 나를 부를 때면 쌀쌀맞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 시킨 일만 하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내가 문을 닫고 나온 방에서는 할머니가 틀어둔 재미없는 티비 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 티비 소리도 싫었다.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내 눈치가 보였던 건지 언제부턴가 물 심부름도 시키지 않으시고 아예 본인이 마실 물을 들고 방에 들어가 잘 나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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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다. 내가 그때 집에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할머니는 욕조에서 나오던 중 넘어졌고 병원에 실려 갔다. 집에 요양보호사가 들락날락했고 할머니는 이상한 소리도 했다. 아 할머니가 방 안에 물을 들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던 때가 다치신 후의 이야기였던가. 옛날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가게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 가족은 점점 할머니를 보살피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게 되었다.
 아빠는 나한테 요양원이 집 바로 옆인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들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지만 언젠가부터 할머니가 싫어졌던 나는 말만 알았다고 할 뿐 할머니에게 들리지 않았다. 아빠는 매주 할머니를 찾아갔지만 나는 고작해야 한 달에 한 번 아빠를 따라가서는 “저 왔어요, 안녕히계세요”를 제외한 말은 건네지도 않았다.
 요양원에 간 할머니는 갑자기 상태가 많이 좋아지셨다. 초반에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셨지만 얼마 후엔 나를 알아보기도 하셨고 표정도 훨씬 좋아졌으며 요양원 친구들도 많이 사귀신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요양원에 더 가지 않았다.
 그러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는 여름방학이었고 나는 토익 스피킹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학교에서 MT를 갔다가 막 돌아왔던 참이었다. 나는 MT를 가서도 놀지 않고 토익 스피킹 시험 준비를 했다. 밤에는 밤새 술을 마시긴 했지만. 그렇게 돌아오자마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고 짐도 풀지 못 하고 엄마를 대신해 가게를 보게 되었다. 그때 난 피곤과 짜증이 가득했다. 엄마가 급하게 찾아갔지만 할머니는 결국은 아무도 보지 못 하고 돌아가셨다. 아빠는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에 할머니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가게를 닫고 장례식장에 갔다. 나는 짐을 챙기면서 잊지 않고 토익 스피킹 교재를 챙겼다. 바로 이틀 뒤가 시험인데 시험을 포기할 수 없었다. 2주 내내 아무도 안 만나고 공부만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상복을 입고도 조문객이 없을 때는 구석자리에 가서 중얼중얼 템플릿을 외웠다. 나 지금 공부중이니까 말 걸지 마라는 티를 팍팍 냈다. 친척들 그리고 오빠와 아빠 엄마는 장례를 하는 내내 울었다.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빨리 템플릿을 외워 목표 점수를 채워야만 했다. 심지어는 아르바이트 스케쥴도 빼지 않아 조문객이 없는 틈을 타 일하던 카페의 문을 열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장례 마지막 날까지도 아침에 홀로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토익 스피킹 시험을 보고 택시를 타고 화장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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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고등학생 때인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제 힘으로 사남매를 키워야 했다. 삼성교 아래 쌀가게 겸 과일 장사를 하시던 할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아이들을 키웠고 고모와 큰아빠는 결혼을 해 자식을 낳았다. 우리 아빠도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할머니는 터미널에 터를 잡으셨다. 엄마는 아빠와 사내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결혼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오빠를 낳고 나서였나 할머니가 엄마에게 터미널 2층에 있는 가게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그곳에서 일을 했다. 오빠는 외할머니네 집에서 키워졌다. 경제관념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물욕이 없고 순수했던 엄마는 머리를 굴려 이익을 보는 일은 서툴렀다고 한다. 그래서 선물가게는 큰 소득을 보지는 못했다. 오빠가 태어나고 5년 뒤 내가 태어났고 엄마는 선물가게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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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원래부터 할머니와 살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우리 집 근처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집이 멀지 않아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오빠가 우는 나를 데리고 할머니 댁에 찾아가는 일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아마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 같다. 긴 세월을 혼자 지내던 할머니에게 다시 가족이 생긴 것이다. 우리 집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다 같이 아침밥을 먹었고 엄마 아빠가 퇴근하고 나서는 또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언제나 할머니 맞은편에 앉아서 밥을 먹었는데 할머니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괜히 나한테 그거 먹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곤 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할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티비를 키고 잠에 드셨다. 물론 티비는 아침까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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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엄마를 닮아 나를 싸가지 없다고 말했던 할머니가 미웠다. 엄마를 미워한 할머니가 미웠다.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방 세 개 중에 하나가 내 차지가 될 수 있었고 듣기 싫은 티비 소리, 가래 끓는 소리, 악쓰는 잠꼬대를 듣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닫힌 방 안에서 들려오던 외로운 티비 소리가 가끔 생각난다.
 내가 할머니의 옷에서 반짝이를 떼지 않았을 때부터 할머니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지 않았을 때부터 할머니가 부항을 놔달라고 할 때 즐거워하지 않았을 때부터 할머니가 설거지 한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어있어 짜증을 냈을 때부터 할머니가 물을 좀 달라고 하는 게 짜증나서 말 한마디 안 걸고 물만 가져다 드렸을 때부터 할머니는 나를 잃었다고 생각하셨을까.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우리 집안에 내가 가장 똑똑하다고 나를 좋아하셨고 제사를 지낼 때면 조그마한 게 절을 저렇게 잘 한다고 나를 예뻐하셨고 내가 사과를 깎아보고 싶다고 하니 위험하다고 앞에서 지켜보라며 과일 깎는 법을 알려주셨다. 내가 용돈을 받으려고 들렀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언제나 용돈을 주셨다. 내가 뭐만 하면 똑부러진다고 칭찬하셨고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내가 너무 야무지다고 말하셨다. 오빠보다 내가 훨씬 낫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엄마를 미워한 할머니가 미웠고 나를 싸가지 없다고 말한 할머니가 싫었다. 사실 할머니는 내가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저 외로움에 튀어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그걸 나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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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제사를 할 때면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한테는 잘 지냈냐고 말을 걸면서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던 할머니에게는 내가 그동안 못되게 굴어 죄송했다는 말은커녕 잘 지내고 계셨냐고 외롭지는 않으시냐고 안부조차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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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며칠이 지나면 토익 스피킹 점수가 만료된다. 나름 고득점인데 아쉽다. 하지만 다 옛날 일이다. 나는 다시 시험을 봐야겠지.